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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이 던진 은접시가 긴 테이블의 중간쯤에 떨어져 그대로 끝까지 굴러갔습니다. 이런 일에 이미 익숙해진 하인은 벌써 테이블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접시는 반짝반짝. 공주님은 펜케이크의 부스러기 한점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한접시 더 주세요.」 공주님이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하인이 힘겹게 말했습니다. 「요리장을 여기로 불러주세요.」 하인은 접시를 안은채로 성의 부엌으로 뛰어갔습니다. 이윽고 나타난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 공주님의 아버지인 이 나라의 임금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성에서 요리를 만들던 사람입니다. 요리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공주님, 그대신 토스트는 어떨까요?」 「싫어요. 난 펜케이크가 더 먹고 싶어요.」 「더 이상은 않됩니다.」 「아버님께서 말린거죠? 충치가 생기면 곤란하다고?」 「그렇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머님이 반대하신건가요? 더이상 드레스보다 커지지 않도록…」 「그것도 다릅니다.」 「자, 밀가루가 없는거예요?」 「밀가루는 있습니다.」 「알았어, 베이킹파우더가 떨어진거로군요.」 「아니,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달걀? 우유? 버터?」 「꿀입니다.」 「어머!」 공주님은 입을 동그랗게 벌린채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공주님은 매일 아침 펜케이크를 먹습니다. 그리고 그 펜케이크만큼 꿀도 먹습니다. 펜케이크에 꿀을 바르는…게 아닙니다. 마치 황금빛 웅덩이에 나뭇잎이 떨어진 것처럼 접시에 가득한 꿀에 펜케이크를 띄워 먹는걸 좋아합니다. 밀가루나 달걀이 아무리 많이 있더라도 꿀이 없으면 펜케이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공주님은 요리장에게 말했습니다. 「기다려 드릴께요. 즉시 꿀을 만드세요.」 「꿀은 만들 수 없습니다.」 「뭐든지 만들 수 있잖아요.」 「저는 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나라의 꿀을 만드는 직공을 불러 주세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꿀벌로부터 꿀을 얻으니까요.」 「꿀벌?」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꿀벌이 벌집에 모여둔 꽃의 꿀을 받아 옵니다.」 「꿀벌이라구요?」 「많은 꿀벌들이 같이 살면서 꿀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날개 달린 곤충입니다.」 「침으로 쏜다는걸 들어본 적이 있어요. 얄미운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꿀벌이 없으면 꿀도 먹을 수 없는거로군요.」 공주님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어렸을 적 꿀벌을 자주 보았습니다. 성의 뜰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때 삐이삐이 소리를 내며 성가시게 귓전에서 날아다니던 곤충, 그게 바로 꿀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벌에게 배달해 달라고 하세요.」 「꿀벌의 무리는 멀리 가버렸습니다. 이 성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째서요?」 「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리장의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공주님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작년까지 성의 뜰 일면은 꽃동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생일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공주님이 화단을 돌로 바꾸도록 시켰습니다. 전체를 평평한 돌로 채운 뜰에서 공주님은 은자전거로 마음껏 달릴 수 있었지만, 성에는 장미꽃도 백합도 해바라기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솜털에 붙어 날아오던 민들레의 씨까지도 뿌리를 내릴 흙을 찾을 수 없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은자전거도 이제는 뜰의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을 뿐입니다. 공주님은 이미 자전거에 싫증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벌이 안보였던 거로군요.」 공주님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서 요리장에게 물었습니다. 「어딜 가면 꽃이 있고 꿀벌이 꿀을 모으고 있나요?」 「이 철에는 북쪽의 초원 어딘가에 있겠지요. 연꽃이나 클로버가 한창일 때이니까요.」 「북쪽의 초원이라니요?」 작은 마을을 하나, 커타란 숲을 하나 넘어가야만 합니다. 더구나 초원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어 꿀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제 충치 걱정은 없다고 아버님은 좋아하실테고 더이상 드레스의 사이즈를 고치지 않아도 된다고 어머님도 안심하시겠지요. 「꿀벌을 찾아 벌꿀을 얻어 오세요.」 라고 아무에게도 명령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공주님은 좋아, 라고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공주님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요리장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
「하지만 이걸로 갈 수 밖에 없어. 북쪽의 초원이라니, 걷기에는 너무 멀테니까. 힘을 내자. 벌꿀을 꼭 찾아내고 말테야.」 공주님은 자기 자신에게 명령했습니다. 공주님은 드레스 속에 몇장씩 겹쳐진 속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속치마가 있으니까 드레스의 단이 둥실하게 부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전거 타기에는 귀찮고 불편합니다. 생일날, 자전거 타기용의 멋진 비단 바지도 선물 받았지만 이제는 너무 꼭 껴서 입을 수 없습니다. 펜케이크를 꿀에 띄워 먹기 때문이라고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공주님은 입을 수 없게 된 바지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싫어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늘은 드레스를 입은 채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공주님은 드레스를 입고 자전거에 올라앉아 오랫만에 핸들을 잡고 살짝 성을 빠져 나왔습니다. 언덕위에 있는 성에서 북쪽 길로 내려오는 일은 간단했습니다. 균형만 잡으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저절로 굴러갑니다. 드레스의 단이 펄럭이는 것이 좀 귀찮았지만 땋아올린 머릿채가 빙글빙글 흔들리는 것은 기분이 좋습니다. 넓은 소매가 바람을 가득 받아 예쁜 풍선같습니다. 「이대로 초원까지 달려갈거야」 공주님이 혼자말을 중얼거렸을 때입니다. 부풀려진 소매통이 공중에서 뭔가를 떠잡아 버렸습니다. 그것은 소매속에서 붕붕 헤매고 있는듯 했습니다. 공주님은 황급히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자전거를 비스듬히 세워 한쪽 다리를 땅에 댔습니다. 그래도 내리막길이어서 멈추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전거를 눕히고 반은 넘어진 것 같은 모양으로 공주님은 소매를 흔들었습니다. 「안에 있는게 누구야! 어서 나와!」 「갑자기 잡아놓고서 화내지 마.」 하고 소매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대로 들어온 건 그 쪽이야. 너 도대체 누구니?」 「꿀벌이란 말야. 눈이 핑글거리네.」 공주님은 깜짝 놀라 팔을 흔드는걸 멈추었습니다. 「침으로 쏘면 용서 안할테야!」 공주님의 소매통에서 조그만 점이 빙글빙글 날아 나왔습니다. 「쏘진 않아. 엉덩이의 침은 하나 밖에 없는걸. 아아, 답답했어」 꿀벌은 아주 조그만 생명체였습니다.공주님의 코등에 탈 정도로 작은데, 줄무늬의 금색 옷을 입고 제법 멋졌습니다. 얼굴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는 꿀벌을 보며 공주님이 말했습니다. 「벌꿀은 어디에 있니?」 꿀벌은 이상하다는 듯, 「뭐라고 했어?」 「너의 동료들과 벌집은 어디니? 거기에 벌꿀이 저장되어 있을거야.」 꿀벌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대답해.」 공주님이 명령해도 입을 꼭 다문채입니다. 공주님은 화가 났지만, 꿀벌은 하인이 아니니까 공주님 말을 듣도록 훈련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위엄이 있게 보이도록 아버님의 흉내를 내어 공주님은 가슴을 폈습니다. 「꿀벌이 동료들과 함께 꿀을 모아 벌집에 넣어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니까. 물론 대신 상을 주도록 하겠어.」 「없다니까.」 「뭐라고?」 「동료들이 없다니까.」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난 외톨이로 있길 좋아해.」 「그런 꿀벌도 있니?」 공주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니 꿀벌은 득의양양하게 공중돌기를 하고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니까! 외톨이가 최고라니까! 네가 살고 있는 곳에는 동료들이 많이 있니?」 공주님은 생각했습니다. 「하인이라면 많이 있지만.」 하인은 공주님의 동료는 아닙니다. 공주님은 이 나라에 딱 한 분. 성에 공주님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공주님은 동료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있잖아, 꿀벌아, 동료가 뭔데?」 공주님이 다그치니까 꿀벌이 웃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이 좋은 친구를 뜻해.」 친구라니, 그게 뭔데? 공주님은 그렇게 물어 보고 싶었으나 다시 웃음거리가 되리라고 생각하니까 입 밖에 낼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 콧소리를 내며 말했습니다. 「나도 외톨이인게 아주 좋은 걸.」 그러면서 공주님은 넘어진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북쪽의 초원에는 꿀벌의 무리가 있다는데, 안내해줄래? 초원의 꿀벌에게 나한테 꿀을 나눠주라고 하는거야.」 외로운 꿀벌은 놀란듯이 공주님의 눈앞을 날아다닙니다. 「북쪽 초원에 다들 있다고?」 「그렇다고 들었어, 꽃이 있다는데.」 「자, 같이 갈께, 물론 동료는 아니지만.」 공주님은 자전거에 올라 탔습니다. 바로 앞에는 꿀벌이 날고 있습니다. 둘은 마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