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스름달의 밤」
가작  
하시모토 가쓰에(오카야마) 작
(橋本 賀津榮)




 그 마을에 늦은 봄이 오고 매화나무도 복숭아나무도 살구나무도 한 때 꽃이 피었습니다. 논두렁에는 제비꽃이나 민들레꽃이나, 작고 귀여운 꽃들이 색색가지로 피었고, 여기저기에 노랑색 유채밭이나 적자색 자운영밭도 보입니다.
 할머니는 유채밭옆, 하얀 토담에 둘러싸인 집에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커서 멀리 떨어진 도회에서 살고 있으며 함께 살자고 하였습니다만, 할머니는 이 집이 좋아서 떠나가기 싫었으므로 혼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근처에 있는 관세음보살님 절의 잿날입니다. 특히 금년은 몇백년에 한번이라는 대단히 감사하는 잿날에 해당하므로 할머니도 친구와 참배하는 것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것을 입고갈까. 슬슬 준비해야지…)
 수요일밤의 일입니다. 할머니는 거실에 있는 옷장서랍을 열고 기모노를 몇벌 꺼내보았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긴 돌층계를 올라갈 때는 양복이 걷기쉽고 편하지만, 당에 올라가 기원하거나 빨간 양탄자위에서 감주를 마실때는 역시 기모노가 좋겠지… 마음이 단정하게 긴장되니까)
 할머니는 기모노를 만드는 것이 득의로 근처 아가씨들한테 바느질을 가리키고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종이에 싸서 보관해둔 기모노를 한벌씩 주의깊게 풀러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추억이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젊었을 때…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매우 떠들썩했던 때…
  (그런데 지금은 오직 혼자… 너무 조용해서 역시 쓸쓸하구나…)
 할머니는 일어나서 툇마루의 장지문을 열고 새시문 저쪽 마당을 쳐다 보았습니다. 밖은 아름다운 달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심은 목련의 하얀꽃이 달빛을 받아 어렴풋이 하얗게 떠오르는듯이 보입니다.
 똑똑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런 시간에 누구일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똑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안녕하세요, 밤늦게 죄송합니다」
 아마도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 같습니다.
 「네 네. 지금 열께요」
 할머니는 서둘러 현관에 가서 미닫이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미닫이문 저쪽에 서있었던 것은 어느 공장의 작업복같은 노랑색 상의와 거무스름한 바지를 입은 젊은 아가씨이었습니다.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만, 살갗이 희고 예쁜 눈의 아름다운 아가씨입니다.
 아가씨는 보자기에 싼 것을 현관 마루에 놓고 자기는 선채로 할머니한테 깊숙히 머리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부탁이 있습니다만, 이 옷감으로 내 기모노와 띠를 만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무슨일이 있어도 토요일 밤까지 부탁드립니다. 할머니 이외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할머니는 놀랬습니다.
 「나는 벌써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것은 만들지 않고 있어요. 도회에 가면 젊고 솜씨좋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가씨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것은 안됩니다. 나는 낮시간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도회에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요… 곤란하게 되었네」
 토요일까지는 아직 3일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상등한 기모노 한벌, 밤일하면서 하루에 만든적도 있는 할머니입니다만, 지금은 눈도 나빠지고 금방 피곤해지므로 도저히 그렇게 빨리 할 수 없습니다. 3일이라면 할머니가 기모노와 띠를 만드는데 겨우 간신히… 라는 기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돈에 곤란한 상태도 아니었으므로 무리해서 피곤한 일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만, 아가씨가 열심히 부탁하므로 거절하는 것도 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우선 옷감을 보도록 합시다. 자 올라오세요」
 아가씨를 거실로 안내하고 할머니는 아가씨가 갖고 온 옷감을 펴 보았습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옷감은 유채꽃같은 밝은 노랑색으로 적자색과 하얀색의 등나무 꽃의 축 늘어지게 피는 모양이. 정말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 이 옷감과 띠의 옷감은 양친의 유물입니다」
 아가씨는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유물? 그러면 양친 두분다 돌아가셨습니까?」
 「네, 훨씬 전에…」
 수긍하는 아가씨는 약간 눈물이 글썽한 것처럼 할머니는 보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다른 곳에 부탁할 곳이 없다면, 어쨓튼 내가 만들어 봅시다」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자 아가씨는 기쁜듯이 눈을 빛내며 다다미에 양손을 대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요즘의 아가씨로서는 드물정도로 예의가 바르군. 그런데 이 냄새는 무엇일까…」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아가씨가 일어나거나 앉거나 움직일때마다 은은하게 퍼지는 냄새이었습니다. 좋은 냄새이기는 합니다만, 향수 냄새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공장에서는 무엇을 만들고 있어요」
 할머니가 물어 보았더니 아가씨는 잠깐 생각하고나서
 「몸에 좋은 식물이던가, 약이던가, 그리고 화장품도 만들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느 꽃밭에라도 있는 것처럼 좋은 냄새가 나는군요」
 「어머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아가씨는 왜그런지 당황한듯한, 곤란한듯한 얼굴을 하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 모습이 왠지 매우 가엽게 보여서 할머니는 공장 이름도 장소도, 그뿐아니라 아가씨 이름조차도 물어볼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아가씨는 할머니에게 몇번이나 인사말을 하고 밝은 달빛의 길을 돌아갔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라 할지라도 이 기모노와 띠는 틀림없이 만들어 놓자…)라고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지만, 왜그런지 먼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이상한 반가움을 느껴 할머니는 오랫만에 기모노를 만들려고 하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할머니는 아가씨를 위해 열심히 바느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이를 먹었으므로 그다지 오랜시간 계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금요일 오후는 매우 화창한 날씨이었습니다. 툇마루 방석에 앉아서 계속해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때 꾸벅꾸벅… 졸 뻔했습니다. 그래서 밖의 바람이라고 넣으려고 새시문을 열었더니 봄바람을 타고 여러가지 꽃냄새가 흘러 들어오고, 꿀벌 한마리가 작은 날개소리를 내면서 날라왔습니다.
 할머니는 날개소리를 들었을 때, 쏘이면 무서운 큰 벌이 아닌가하고 도망갈 준비를 했습니다만, 잘 보았더니 작은 꿀벌이었으므로 그대로 일을 계속했습니다.
 꿀벌은 거의 다 만들어진 아가씨의 기모노위에서 천천히 날라 돌았습니다.
 (어머나, 이 기모노에 그려져있는 등나무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꿀벌도 마음에 들어 떨어지기 싫은 모양이구나…)
 할머니는 꿀벌을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아름답지? 그러나 그 등나무꽃에서는 꿀은 나오지 않아. 이것은 어느 아가씨의 귀중한 기모노이니까 더럽히지 말어줘」
 할머니가 말하는 것을 알았는지 어떤지, 꿀벌은 조용하게 마당으로 날라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밤에는 그 아가씨의 기모노와 띠는 완전히 훌륭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옷걸이에 다 만들어진 기모노를 걸어놓고 아가씨를 기다렸습니다.
 (틀림없이 기뻐할꺼다…)
 할머니는 아가씨에게 입혀주는 것을 즐겁게 기다리며 항상 앉아있는 방석에 앉아서 창문밖의 밤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도 아름다운 달밤이었습니다. 보름달에 가까운 큰 달이 봄의 안개에 희미하게 에워싸인 아름다운 으스름달의 밤이었습니다.
 「할머님… 할머님…」
 어느틈엔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아가씨의 목소리에 눈을 떳습니다.
 「어머나! 너는…」
 할머니는 매우 놀랐습니다. 방 한구석에 그 아가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 뿐만이라면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만, 아가씨는 만들어진 기모노를 입고 띠도 완전히 잘 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은 무슨 시대극에서 빠져나온 공주님같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기모노와 띠, 아름답게 바느질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않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이제 겨우 관세음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5백년전의 내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가씨의 이야기는 매우 매우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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